시리아 전통 향신료 바하라트는 절구에 빻아 만드는 복합 조미료로, 풍미와 전통이 녹아든 요리 문화의 핵심 재료입니다.
중동 지역의 요리는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향신료가 요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리아는 이 지역에서도 특히 풍미 깊은 조합 향신료를 발달시킨 나라로, 그 중심에는 ‘바하라트(Baharat)’라는 향신료 블렌드가 있습니다. 바하라트는 아랍어로 ‘향신료’를 뜻하며, 시리아를 비롯한 레반트 지역에서는 이 조합을 직접 절구에 빻아 만드는 전통 방식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바하라트의 구성, 절구 조합의 의미, 요리에서의 쓰임새, 그리고 현대적인 활용 가능성까지 살펴봅니다.
바하라트란 무엇인가? – 시리아의 조합형 향신료
바하라트는 여러 향신료를 배합해 만든 복합 조미료로, 일반적으로 7~9가지 이상의 재료가 사용됩니다. 시리아식 바하라트에는 주로 검은 후추, 고수 씨, 커민, 카다멈, 정향, 계피, 육두구, 파프리카, 건 생강 등이 포함됩니다.
특징적인 점은 이 모든 재료를 절구나 돌절구(마르타카)에 넣고 직접 빻아 조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가루를 섞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향신료를 적절히 부수고, 서로 간의 향이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시간을 들이는 과정입니다. 절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기계식 그라인더보다 향이 덜 날아가고, 식재료 본연의 향이 더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절구에 빻는 문화 – 단순한 조리 도구를 넘어서
시리아와 레반트 지역에서는 절구가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닌, ‘풍미를 빚는 그릇’으로 여겨집니다. 향신료를 빻는 행위는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작업이며, 재료 간의 균형을 몸으로 느끼며 조절하는 감각적인 조리법입니다.
절구로 향신료를 빻는 과정은 각 가정의 전통과 레시피를 반영하며, 어떤 재료를 얼마나 넣고, 어느 정도 곱게 갈 것인지는 가정의 입맛과 세대 전승에 따라 다릅니다. 실제로 시리아에서는 ‘어머니의 바하라트가 곧 그 집의 맛’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하라트는 정체성과 취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단순히 향신료를 조합하는 기술을 넘어, 향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요리 철학이 담긴 조리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시리아 요리에서 바하라트의 쓰임새
시리아 요리에서 바하라트는 거의 모든 요리에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양고기 스튜, 케밥, 쌀 요리(마클루베), 토마토 소스 베이스의 채소 요리, 렌틸 수프 등이 있으며, 고기와 채소를 동시에 조리할 때 조화로운 맛을 만드는 핵심 조미료로 활용됩니다.
바하라트는 소량만 넣어도 음식의 전체 풍미를 결정짓는 강력한 조합이며, 고기 특유의 잡내를 제거하고, 감칠맛과 따뜻한 향을 동시에 부여합니다. 요리 초반에 기름과 함께 볶아 향을 우려내거나, 조리 마지막 단계에 넣어 잔향과 깊이를 조절하는 등 활용법도 다양합니다.
또한 바하라트는 혼합된 상태로 판매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전통 가정에서는 직접 만든 것을 더 선호하며, 이 과정 자체가 요리의 일부로 여겨집니다.
현대 요리에서의 바하라트 활용과 문화적 가치
최근에는 바하라트가 중동 요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과 북미의 레스토랑, 비건 요리, 퓨전 음식에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고기 대체 식품에 풍미를 부여하거나, 그릴 요리, 수프, 오븐 구이 등에 활용되어 전통 향신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하라트는 단순한 조합 향신료가 아니라, 문화적 의미와 정체성이 함께 담긴 재료입니다. 직접 빻아 만드는 방식, 재료 선택의 감각, 요리와의 균형 등은 ‘요리하는 사람의 손맛’이 향신료에 녹아드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오늘날에는 소형 절구를 활용한 바하라트 만들기 체험 클래스, 가정용 바하라트 블렌더 키트 등이 등장하며, 단순한 조리 도구를 넘어서 전통 향신료 문화를 경험하는 매개체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