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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거나 절이는 향신료 문화 – 필리핀 ‘바고옹’에서 찾은 힌트

필리핀 전통 발효 향신료 ‘바고옹’은 강한 풍미와 감칠맛을 지닌 재료로, 다양한 요리에 깊이를 더해주는 문화적 조미료입니다

 

동남아시아의 요리는 다양한 향신료와 발효 문화를 기반으로 발달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필리핀은 특유의 해양 환경과 식민지 역사, 지역 전통이 어우러져 독특한 향신료 사용법을 발전시킨 나라입니다. 특히 ‘바고옹(Bagoong)’은 단순한 발효 젓갈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풍미를 가진 향신료 역할을 수행하는 재료입니다. 필리핀 요리에서는 바고옹을 양념, 조미료, 소스, 심지어 주재료로까지 활용하며, 이는 단순한 맛을 넘어서 전통적 조리 방식과 문화적 상징성이 결합된 식재료입니다.

찌거나 절이는 향신료 문화 – 필리핀 ‘바고옹’에서 찾은 힌트

 

바고옹이란 무엇인가?

바고옹은 필리핀 전통의 발효 음식으로, 작은 생선(보통 앤초비나 새우)을 소금에 절여 오랜 시간 숙성시켜 만든 향신료 겸 조미료입니다. 대표적인 종류로는 생선으로 만든 ‘바고옹 이스다(Bagoong Isda)’와 새우로 만든 ‘바고옹 알라망(Bagoong Alamang)’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고유한 색, 향,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과 가정에 따라 그 조합 방식이 다양합니다.

이 발효 과정은 수개월에 걸쳐 이뤄지며, 그동안 미생물 활동에 의해 강한 감칠맛과 독특한 향이 생성됩니다. 바고옹은 액체 상태의 젓갈과 달리 걸쭉한 페이스트 또는 반건조 형태로 존재하며, 음식에 넣으면 강한 향으로 요리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짓는 향신료로 기능합니다.

 

 

필리핀 요리에서 바고옹의 역할

바고옹은 필리핀 요리 전반에 널리 쓰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활용 예는 ‘바고옹 라이스(Bagoong Rice)’로, 바고옹을 볶아 밥에 버무린 요리입니다. 이 외에도 그린 망고에 바고옹을 곁들이는 간식, 채소볶음 요리 ‘핀악베트(Pinakbet)’, 돼지고기 요리 ‘비논간(Binagoongan)’ 등에도 주로 사용됩니다.

이 향신료는 매우 강한 향을 가지기 때문에, 단독으로는 다소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조리 시 다른 재료와 결합되면 음식에 깊이 있는 풍미를 부여합니다. 바고옹은 단순히 짠맛이나 비린맛을 위한 재료가 아닌, 음식의 밸런스를 맞추고 풍미를 확장하는 핵심 향신료로 여겨집니다. 필리핀 가정에서는 각 집마다 바고옹을 직접 담그거나, 시장에서 구입해 식탁의 중심에 두는 문화가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효 향신료로서의 기능성과 건강 가치

바고옹은 단순히 풍미만을 위한 재료가 아닙니다. 발효를 통해 생성된 유기산, 효소,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어, 장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바고옹은 발효가 깊어지면서 감칠맛이 강해지고, 소량으로도 음식 전체의 맛을 바꿀 수 있는 고농축 향신료가 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바고옹이 식욕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하며, 무더운 날씨에 땀 배출을 유도해 체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고옹은 무더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단백질 보충과 소화 촉진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실용적 식재료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다만 염분이 높기 때문에 사용하는 양에는 주의가 필요하며, 최근에는 저염 바고옹이나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물성 발효 바고옹도 개발되고 있어, 그 활용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문화, 전통, 맛을 담은 향신료로서의 가치

바고옹은 단지 발효된 젓갈이 아니라, 필리핀 사람들의 정체성과 조리 철학이 담긴 향신료입니다. 같은 동남아 지역의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에서도 비슷한 발효 조미료가 존재하지만, 바고옹은 필리핀 고유의 조합 방식과 사용법으로 차별화됩니다.

예를 들어, 태국의 ‘남플라’가 액체 형태라면, 바고옹은 더 진한 향과 질감을 가진 고체형 향신료입니다. 이는 조리 중 볶거나 절일 수 있는 등 더 다양한 형태로 조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 필리핀에서는 바고옹이 단순한 재료를 넘어, 축제 음식이나 손님 접대 음식에 반드시 포함되는 상징적인 재료로도 쓰입니다.

이처럼 바고옹은 단순한 젓갈을 넘어서, 시간과 정성이 담긴 문화 자산이자, 향신료의 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외국 셰프들도 이 향신료를 활용해 퓨전 요리를 시도하고 있으며, 그 독특한 향과 질감 덕분에 세계 식문화 속에서도 점차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습니다.